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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와 신학 기고글] 복음이 불신자들의 진정한 필요입니다 – 김형국 목사

작성자
하나복
작성일
2017-05-05 12:16
조회
2040

복음이 불신자들의 진정한 필요입니다.

일시: 2006년 3월 23일 오전 10시 30분
장소: 대광고등학교 내 나들목사랑의교회
진행: 홍순석 목사([목회와 신학] 기자)

김형국 목사는 연세대학교를 나와 미국 트리니티신학교에서 신약학을 전공했다(M.Div., Ph.D.). 5년전 나들목사랑의교회를 개척하여 한국 교계에 교회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불신자 전도와 관련된 이번 대담을 통해 청년들과 불신자들에게 어떻게 적실한 복음을 전할 것인가에 대한 귀한 도움이 있기를 바란다.

목사님께서는 불신자와 청년들을 대상으로 주로 어떻게 설교하십니까?

저에게는 강해설교가 매우 중심을 이루는 설교 형식이고 또 가장 편하게 설교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에서 돌아와 처음 사역했던 것이 ‘찾는이’ (나들목교회에서는 불신자들에게 긍정적인 이름을 붙여주기 위해 이 단어를 쓴다)들에게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였어요. 그들에게 성경을 이야기하면서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한국에 들어와서 컨텍스트의 문제를 갖고 그것을 성경이 어떻게 가르치는 지를 살펴보도록 했습니다. 현실의 문제를 보고 그것에 대해 성경이 뭐라고 가르치는가를 거꾸로 찾아가서 얘기해 주는 방식을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주제별 설교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불신자와 신자에게 다 필요한 주제와 이슈를 삶의 컨텍스트에서 찾고, 그 이슈를 텍스트인 성경에서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를 주일날 설교하고 있습니다.

불신자와 신자들이 같이 공감하는 이슈라고 하는 것들을 매주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이 일이 가능한 지에 대해 의문이 있었어요. 차라리 불신자들만 놓고 설교를 하든지 신자들만 놓고 설교하는 것이 훨씬 쉽고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발견한 것은 거의 대부분의 회중은, 그들이 신자든, 불신자든, 공감하는 이슈들을 가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는 ‘찾는이’들이 많이 오지만 여전히 60~70%는 신자입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춰 설교할 것인가에 대해 한 동안 방향을 정하기 쉽지 않은 면이 있었지만 “하나님 나라 복음”이 얼마나 우리의 삶에 실제적이며 적절한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신자와 신자 모두에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신자들한테는 기독교가 자신의 삶에 실제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이성 교제, 사랑, 성공의 문제 등입니다. 한 번은 제 친구 하나가 저희 교회로 왔다가 교회 다니기로 결심했는데 그 이유가 그날 설교 주제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설교 시리즈주제가 “건강한 여름나기”였는데, 그날은 여성들의 노출을 어떻게 볼 거냐하는 설교였거든요. 그 친구가 “야, 나는 교회에서 그런 문제를 설교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얘기하는 것이었어요. 그런 개인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를 찾아서 설명합니다.

그렇게 설교하니까 불신자들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기 시작해요. 하나님이 사람을 괴롭히고, 힘들게 만들고, 정죄하고, 쫓아다니면서 심판하시는 줄 알았다가, 그게 아니라 우리에게 정말 풍성한 삶을 주길 원하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반면에, 이런 설교는 신자들에게 복음을 가지고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의 영역에서 나오는 이슈가 수 만 가지가 아닙니까? 예를 들어서 사랑하라고 하는 말을 교회에서는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라고 가르친다고 사랑할 수 있나요? 예를 들어, 내 자존감을 계속 허물고 심할 경우에 나에게 폭력을 가하는 내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하여야 하는지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사랑하라는 원론적인 얘기를 수 백 번 들었는데, ‘어떻게’ 구체적으로 사랑하라 들어보지 못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설교자들이 텍스트에 대한 고민보다는 그 텍스트가 컨텍스트에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가지고 씨름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목회자들이 상황화에 따른 내용들을 상당히 세부적으로 분류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죠. 설교자가 텍스트 자체를 얼마나 깊이 이해했는가가 설교의 기초이라면, 설교의 완성은 그 설교가 전달되어지는 컨텍스트에 대한 이해에 딸려 있습니다. 그 때에야, 그 말씀이 분명히 회중의 마음에 꽂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심리적인 면, 문화적인 맥락, 사회적인 현실, 역사의 흐름 등을 잘 알 필요가 있습니다. 목회자는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정도까지만 설교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구약의 설교자 중에서 아모스를 굉장히 존경하는데요, 아모스는 뽕나무 치는 농부 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이스라엘 주변국가에 대한 국제 정세에 대해 어떻게 달통했는지 놀라울 따름이에요.

텍스트가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연습을 하는 게 중요하다면, 또 하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컨텍스트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하는 것입니다. 이 때, 회중들이 지금 당하고 있는 필요와 지금 느끼지 못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메시지가 날카롭고도, 살아나지 않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성도들의 고민도 많은 경우 현실적인 문제들이 아닐까요? 그 현실적인 문제들을 복음의 관점에서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요?

우리의 필요라는 측면에서 느껴지는 필요(felt need)와, 진정한 필요(real need)를 구분해야 합니다. 설교자는 두 가지를 다 다루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필요는 현실적이지만 그 문제를 거슬러 올라가면 진정한 필요에 닿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내가 알아야 하는 것은 내가 모르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지요.

진정한 필요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어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그리고 이 관계를 중심으로, 이 느껴지는 필요가 채워질 수 있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자신들이 느끼는 필요의 진정한 답변입니다.

이 답을 사람들한테 주는데 있어서 이것을 어떻게 실제적으로 연결시킬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회자 자신이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스스로 자신에게 적용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설교가 결코 책상 위에서만 이뤄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회중들이 살고 있는 시장 바닥으로 가야 됩니다.

또 어떤 경우는 아예 느껴지는 필요도 못 느끼는 경우도 있어요. 예를 들어서, 통일 문제 같은 것입니다. 통일 문제에 대해서, 남쪽 사람들은 느껴지는 필요가 없어지고 있어요. 그것을 위해 목회자가, 남북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요즘 마케팅에선 사람들로 하여금, ‘필요’를 창출한다 그러잖아요. 그 사람들이 필요를 못 느꼈다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서 그 물건을 팔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들보다 더 치열하게 그들이 못 느끼는 영적 필요를 느끼게 해 주고, 거기에 대한 성경적 답변을 해 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들 가운데는 자기가 살아온 세계관 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한계 같은 것이 있지 않습니까?

한계가 있지요. 특히 90년대까지 우리 교회는 너무 편향되게 가르쳤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선배 목사님들이, 50년대 이후 생존의 시대를 거치면서, 성경의 가르침을 기복적으로 접근하신 것들에 대해 비난할 자격이 우리 세대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은 그때 최선을 다하신 분들이에요. 신학 교육도 제대로 못 받으셨지만 하나님을 믿으면 복 받는다는 메시지가 성경에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 쪽에 집중하셨던 것이지요. 그분들은 그때 최선을 다하셨어요.

제가 걱정하는 것은 이제 제대로 교육을 받은 목사님들이 고민을 하지 않고, 기복적인, 그러니까, 이원론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탈상황적인 신앙을 지금 팔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것은 심판을 받을 문제가 아닐까요? 교회에서 통용된다는 이유로 충분히 신학 공부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에 집중하지 않고, 지금까지 쓰여졌던 방법을 그냥 쓰고 있다면 문제입니다. 우리 윗 세대가 열악한 상황 속에서 쌓아놓은 기초를 감사한 마음으로 선별하고, 그 위에 우리 세대는 더 온전한 교인과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더욱 바르게 신학하고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일반적으로 불신자들의 실제적인 필요는 행복, 건강, 여유 있는 생활 같은 것 아닙니까? 그들에게 영적 진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부담이 아닐까요?

우리 교회에 그래도 불신자들이 많이 오는 편입니다. 그들이 교회에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해요. 설교를 듣고 나면 철학 강의를 들었던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아직 하나님을 잘 모르는데도 설교를 듣고 난 다음 자기한테 도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그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가 전달되었다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을 열어요. 이런 하나님이라면 내가 왜 안 믿나라고 생각한단 말이지요. 찾는이들에게 영적인 진리는 그들의 필요와 수준에 맞게 전달됩니다.

반면 어떤 목회자들은 우리가 십자가 복음만을 전해야 하며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다 들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한국 상황은 과거에 단순하게 사고하고 결정해야만 하던 상황에서, 굉장히 복잡해졌는데 그 중 중요한 것은, 과정이 중시되는 문화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문화가 사실 좋은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엔 생존의 문제였기에 ‘살거나 죽거나’였습니다. 신앙도 ‘믿을래, 안 믿을래’, ‘천당갈래, 지옥갈래’와 같이 단순히 결정해야하는 내용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접근해서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하고 있는 사역은 과정 중심적입니다. 절대로 한번 듣고 끝나는 게 아니라, 나중에 또 들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드는 연결되는 내용을 가지고 설교하는 것입니다. 한 번은 용서에 대한 시리즈 설교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용서 시리즈를 듣고 난 다음에 ‘찾는이’들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용서는 인간의 성숙과 함께 가야 될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불신자들이 하는 거죠. 그리고 나서 그 용서의 중심에 하나님의 용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복음이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거죠. 저는 오늘날 불신자들에게 그런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때로 전도 집회를 할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도집회는 이미 수확하기로 준비된 사람들을 얻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입니다. 수확될 준비가 안 된 사람은 전도 집회에 와도 수확이 되지 않습니다. 이미 여러 가지 차원을 통해서 툭 건드리면, 밀 이삭이 툭 떨어질 정도로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전도 집회 때 복음을 듣고 영접하는 거죠. 물론 아주 능력있는 전도자가 설교해서 준비도 안 된 사람이 메시지를 듣고 바로 회심하게 되는 일도 일어날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이미 준비된 사람을 수확하는 행사라고 봅니다. 그렇기에 전도 집회를 잘못하면 덜 준비된 사람들이 집회에 참석하고 나서는 더 이상 복음을 듣고 싶지 않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 전도자는 굉장히 조심해야 됩니다. 초대받고 전도 집회에 와서, 다시는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라고 말하고 갈수 있다는 거죠. 그러므로 복음전도(evangelism)보다 복음전도 전단계(pre-evangelism)가 필요한 것입니다.

또 하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요. 전도집회 때, 전해지는 복음이 어떤 때는 복음이 아닐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하지 않고 복음의 주변부만 맴돌면서 결단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회심을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을 듣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회심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하나님에 대해서 한번 추구해 보겠습니다. 알아보겠습니다”라는 의미에서는 손을 들거나, 일어날 수 있지만, 그건 회심하고는 관계없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는 분명히 전하고, 회심을 요구할 때는 회심을 요구할 수 있는, 분명한 복음을 전해야 된다. 그렇게 믿어요.

목사님께서 구체적으로 복음 전도를 할 때, 그 주 내용들은 어떤 것입니까?

제가 전도 설교할 때 반드시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하나님이 우주와 우리 인생의 주인이라는 사실이에요.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로 설교를 시작하면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해요, 하나님이 우주와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다. 이것이 첫 번째 중요한 점이고, 두 번째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되어 있는 것이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예수님이 돌아가셨다. 네 번째는 이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인인 인생, 화목한 관계를 누리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대략 이런 내용을 가지고 설교하는 데 실제 설교에서는 이 말씀을 그냥 전하면, 회중에게 전달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청중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이 복음과 연결시키는 작업을 해야죠. 다양한 방법이 있겠죠. 그건 굉장히 창의적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의대생들한테 설교할 때가 있었어요. 의대생들은 굉장히 짜여지고, 아주 어려운 공부를 하면서 지쳐 있는 친구들이거든요. 이 친구들에게 필요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때 제가 했던 것은 ‘자유’에 대한 설교였어요. 그 전도 집회 때는 제가 저희 교회 재즈 밴드와 함께 갔습니다. 재즈라고 하는 음악 자체가 갖고 있는 속성이 자유, 다양함의 조화, 이런 것이쟎아요? 개개인의 독특성이 있으면서 전체가 어울리는 하모니가 있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재즈 음악 연주를 듣고 난 다음에 재즈가 갖는 그런 자유로움과 그 전체 하모니 속에서 개인의 독특성이 나타날 수 있는 것들을 얘기하면서, 이것이 어떻게 인간에게 가능한가를 질문했어요.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죄를 설명하고, 이런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온전한 자유에 이르는 길이라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똑같은 복음을 전하는데, 접촉점을 달리 한 것이죠. 청중의 필요를 보면 거기에 맞춰 할 수 있는 예들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말씀 듣다 보니, 이런 일을 위해서는 목회자들에게 많은 창조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조성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창조성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정말 사랑하면 길이 보이는 것 같아요. 창조성은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들을 자꾸 품으려고 하면 그들에게 접근해 나갈 수 있는 길이 보이는 것 같아요.

놀라운 복음을 가진 자로서 이것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면 처음에는 길이 잘 안 보이지만 나중에는 길이 조금씩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되더군요. 그들과 이야기하고, 그들을 품으면, 받아들일 준비도 안 되어 있고, 경계하는 사람들에게 갈 수 있는 길을 주님께서 보여주지 않으실까요?

청년들과 불신자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증거 할 것인지에 대해 동료 목회자들에게 권면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저도 늘 부족함을 느끼지만, 복음 전도의 대상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고, 대상을 마음에 품으려는 태도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 이미 우리가 가진 메시지가 그들을 향해 어떻게 흘러갈 수 있는 지 길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하고 싶은 말씀은, 성경이 말하는 바를 오늘날 시대에 적실하게 가르치려고 목회자들이 애를 썼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 텍스트의 이상적인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가르치려고 애를 쓰고, 역설적이긴 하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우리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매우 민감하게 이해한 상태에서 복음을 전한다면, 성경에서 가르치는 이상적이면서도 매우 실제적인, 이 두 가지가 함께 하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생각합니다.

저에게는, 텍스트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상황에 대한 지평의 넓이가 점점 확대되어 나가, 한국 교회 설교가 세대가 지나감에 따라 더욱 더 업그레이드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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