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기고글-2004.5] 신약 교회관의 관점에서 보는 목회적 여성 이해 - 김형국 목사

작성자
하나복
작성일
2017-07-0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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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
교회 안의 여성 문제를 다룸에 있어 교회의 정체성이나 교회관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도 중요하리라 봅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의 교회관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얘기하는 교회론은 구원론하고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바울의 구원론의 아주 중요한 개념은 우리가 죄 가운데 있었을 때 하나님과 우리 관계가 깨어졌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깨어진 관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지고 사람과의 관계도 회복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것에 대해 에베소서 2장 같은 경우는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막힌 담이 허물어졌다라고 얘기하고 있고 갈라디아서 3장 27~28절에는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 다시 말해 세례 받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누구든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구약적인 전통에서 봐도 동일합니다. 하나님나라가 온전히 회복되어졌을 때 더 이상 인간의 지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종적, 사회적, 성별 등 어떤 차별도 사라집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불리 우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바울이 말한 교회론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 신학에서 이야기하는 교회의 본질적인 면을 남녀의 관계를 포함해서 형상화한다면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요?

바울의 교회론은 여러 가지 접근을 할 수 있지만 그 가운데 중요한 세 가지 메타포(metaphor)를 들라면 첫째는 하나님의 가족, 둘째는 그리스도의 몸, 그리고 셋째는 성령의 전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교회를 이해할 때, 이는 하나님과 관계없었던 진노의 자식이었던 우리가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가족에 입양되었다는 것이지요. 입양된다면 그 안에는 당연히 아들도 있고 딸도 있는 것이죠. 입양되었기 때문에 그 집에서 어떤 계층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가족의 특징이고 오직 섬김과 사랑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가 어떤 오해를 하기 쉽습니다. ‘가족’이라는 단어를 얘기할 때 우리는 성경 안에 담긴 의미보다는 우리 문화에 담긴 가족 개념으로 이해하거든요. 그래서 성경의 가르침을 문화적인 필터(filter)를 가지고 읽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어온 우리 가정 문화는 어떻습니까? 대게 아주 유교적인 가부장 문화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가족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 조심스러운 것이 이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를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일뿐 아니라, 가족을 생각하더라도 가부장적인 구조로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굉장히 풍성한 비유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거죠. 이런 점들을 고려해서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의 가족라는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고 나머지는 다 서로 형제자매의 관계로 이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곳에 만약 권위구조가 있다면 두개만이 존재하는 데 첫째는 하나님과 자녀들의 관계와 둘째는 형님, 누님 그리고 아우, 동생의 관계입니다. 후자의 경우도 상하 관계라기 보다는 누가 많이 섬기고 돌보는가로 이해해야겠지요. 신약 성경에는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를 나누고 그 중간을 계층으로 구분 짓는 것은 도대체 찾아 볼 수 없는 생각입니다. 교회 속에 어떤 인간적 권위 구조를 만드는 것은 예수님 말씀처럼 ‘너희들 가운데서 누구든지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면 섬기는 자가 되고 큰 자가 되려면 작은 자가 되라’는 기본적인 가르침에 반하는 것이지요. 교회 안의 남녀의 문제도 이런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같은 교회의 그림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남녀관계는 두 가지 면에서 봐야 될 것 같아요. 첫 번째 것은 지금 얘기했던 구원론적 입장에서 보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의 차별이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가족원이 되었을 때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나라를 상속한다면 남녀의 차이 때문에 상속이 달라지지 않는, 동일한 상속권을 갖는다는 그런 아들과 딸로서 남녀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일한 상속권’이라는 개념이 재미있군요. 요즘 사회에서는 문중의 유산을 출가한 딸들에게는 상속할 수 없다는 문제가 법정으로까지 비화되기도 하는데 말이지요.

상속권으로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우리나라 식으로 표현한 것이고 베드로전서 3장 7절에서 아내들은 남편과 함께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상속권은 신약성경에 아주 분명히 드러나는 내용입니다. 두 번째 면은, 교회 안에서 남녀가 함께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7~28절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고 하시는데 여기서 중요하게 봐야 할 부분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남자와 여자에게 모두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 혼자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낼 수 없고 여자 혼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남녀가 함께 있을 때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는 교회라는 곳에서야 말로 바로 이런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하게 드러내는 공동체를 만들어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이 둘 중 하나가 약화되면 하나님의 형상이 약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구원론적 입장에서 모든 사람을 차별이 없게 그리스도안에 속하게 하고 하나님나라 속에 들어온 사람들을, 남녀 그 고유의 특징들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으로 온전하게 드러내게 하는 것이 바로 교회공동체인 것입니다.

일반적인 사회 통념에서 보는 남녀관계는 동등이나 구별, 아니면 차별의 개념 등으로 나뉘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적인 남녀 관계의 모델은 어떻게 제시하면 좋겠습니까?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가족이라는 것을 현실 속에 있는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이해하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교회상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성경이 기록된 당시 상황의 문화를 이해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봅니다. 디모데전서나 고린도전서 등에서 남녀관계의 문제를 다룰 때는 특별히 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많은 신학자들이 얘기를 합니다. 물론 굉장히 논쟁이 많은 부분이라서 단정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쉽지 않지만 바울이 디모데전서와 고린도전서에서 이야기한 것의 문화적인 요소들을 파악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바울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자기 시대 가장 중요한 사역자와 동역자로 여기며 생명을 바꾸어도 아깝지 않게 생각했다는 내용과 로마서 16장이나 골로새서 4장에서 교회 지도자로서 언급되는 많은 여성들의 이름들의 등장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봅니다. 어떻게 보면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입장하고는 맞지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보기에 사도바울은 남자와 여자는 교회 안에서 하나의 팀이라는 개념을 굉장히 강력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은사의 탁월성과 영향력, 지도자적인 역할의 경중에 따라 남녀의 관계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누가의 경우 사도행전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의 이름 순서를 바꿔서 인용하는데 이를 놓고 볼 때 아마도 브리스길라의 가르치는 은사가 더 많았던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학자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누가의 경우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나 ‘바나바와 바울’ 등의 이름을 거론할 때 그 순서에 굉장히 신경을 쓰거든요. 그러므로 디모데전서라든가 고린도전서를 가지고 보편적인 원리를 끄집어내려는 것보다는 오히려 바울의 구원론과 교회론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각론에서 적용점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교회 현실에서 우리가 어떤 점들을 적용해 볼 수 있을까요?

교회 안에서 남녀 가운데 한쪽만 강조하게 되면 교회는 하나님의 형상을 심각하게 훼손하게 됩니다. 한국교회는 남성중심의 이미지가 매우 강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개념으로 말입니다. 교회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까지 나타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은 교회의 리더십에 남자와 여자가 함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교회의 전체 구성원 가운데 70%가 여자면서 당회에는 여자가 한 명도 없는 것이 오늘날 대다수의 교회 모습 아닙니까?

특별히 한국교회 안에서 간과되고 있는 여성들의 역할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남성과 여성의 구별을 떠나서 일단 많은 교회에서 여성들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필요를 교회가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 싱글들이 점점 많아지거든요. 특히 남성은 좀 덜한 편인데 여자 싱글들, 특히 교회 안에 있는 여자 싱글들은 결격자인 것처럼 보는 시선들이 없지 않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결혼만이 정상적인 생활형태라고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을 다르게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같은 경우에도 그렇지만 실제로 교회에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싱글들이거든요.

또한 여성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아이가 서너 살 될 때까지 아주 힘든데 여성들을 위해서 교회에서 지원을 별로 하지 않습니다. 유아실 만들어주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런데 엄마는 애들과 일주일 내내 고생하다가 다시 유아실에서 아이를 보려면 예배드리는 것에 매우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이유가 여성들의 필요에 대해서 귀 기울여 줄 사람들이 리더십 그룹에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아주 기본적인 필요를 알고 나서 그 다음에 하나님의 형상이든지 또 다른 문제를 다룰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나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가 교회 안에서의 여성성의 역할입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얘기한다면 여성이 좀더 관계지향적이고 정서적이고 포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관계지향적인 성향들이 교회를 부드럽게 한다고 봅니다. 당회원 중에 성숙한 여성들이 좀 있었다면 오늘날 교회의 당회가 저렇게까지 싸울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관계들을 봉합시키고 부드럽게 만들고 일 중심적인 구조에서 사람 중심적인 구조로 바꿀 수 있게 하는 기여를 여자들이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여성과 남성은 그런 면에서 파트너십을 가지고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협력할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교회의 특징들을 생각해 볼 때 화평케 하거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온전한 관계 속에서 성숙하게 하는 모습들은 어떻게 보면 교회 사역 안에 담겨진 여성다움이 많이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런 점에서 요즘 교회에는 성장주의, 대형화, 프로그램 중심 등의 남성적 역동성을 강조하는 불균형적인 측면이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교회가 외형주의와 과업중심주의로 지나치게 나갈 수 있는 것은 이런 점들을 도외시했기 때문이라고 보여 집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연초에 표어를 정할 때보면 관계의 질을 발전시킨다거나 교회 안에서 잃어버린 자들을 찾는다거나 소외된 자들을 보살핀다는 내용이 별로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남성 중심의 사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드는 대목입니다.

젊은 세대의 여성일수록 점차 교회 안의 여성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대안적인 모델들을 찾고 있는데 여러 가지 장애도 만만치 않습니다. 실재로 여성의 역할, 리더십에 대해 각 교단의 헌법이나 총회의 규칙 등과 조율을 이루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문제 상황에서 물론 총회의 법을 바꾸는 방법이 있을 수 있지요. 그것은 점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외부적인 요건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 부서에서 부위원장 등에 여 성도들을 임명한다면 관련된 부서의 의견들을 충분히 수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노예제도를 없애라고 말하지 않았으면서도 노예제도를 없애는 시한폭탄을 설치했다고 학자들이 표현하는 것처럼 교회의 각 위원회에 여자들이 자신의 의견과 입장과 관점을 드러내게 해주고 그것을 경청할 수 있는 교회 분위기만 된다면 교회 안에 여성의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부에서는 교회가 지금도 잘 되고 있는데 이런 부분들을 생각하고 위원회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들여보내야 하느냐는 생각을 갖고 계신 분도 있지 않을까요?

그것은 더 본질적인 데서부터 문제가 시작 되는데요, 기성 교회의 목사님 가정도 가부장적인 구조인 경우가 적지 않거든요. 사모님은 남편에게 더군다나 목사님에게 아무 말 못하는 그런 가정구조가 많이 있습니다. 그 속에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굉장히 굳어져있는 것이죠. 그것이 교회에서도 똑같이 이뤄지는 거구요. 그러니까 이 문제는 아무리 얘기를 해도 본인들의 삶 속에서 여성의 가치를 재발견하기 전까지는 쉽지 않은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는 사이 세상은 많이 변하고 있는 것이지요.

끝으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으로서의 교회 안에서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어떻게 좋은 모습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다는 것은 영적인 실제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영적인 사실이면서 동시에 이상입니다. 이것이 일종의 패러독스(paradox)인데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남성과 여성이 철저하게 가부장적인 관계로 묶여 있었던 문화에서 상당히 민주적인 문화로 이전해나가고 있는 과도기적인 시점에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남자와 여자는 구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거의 영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현장 속에서 보기를 원하는 시대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복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는 유리한 입장에 서게 하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정말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것은 이상이며 그런 방향을 향해 차별이 없이 나아가야 되겠지만 우리가 서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육신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실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차별이 없는 상태가 됐지만 우리 육신은 우리 문화적인 상태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전후서에 나왔던 상황은 바로 그런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문화에서는 여자들이 남자를 가르치는 것과 여자들이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는 문화적인 요인이 굉장히 강했고 조금씩 사라져 가고는 있다지만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바라보면서 그쪽 방향으로 향할 때 유념해야 하는 것은 개인을 포함한 개 교회마다 그 정도와 현상들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느 개인이나 어느 집단은 아주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또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상당히 민주적인 분위기에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 정도가 개인과 모임 그리고 교회마다 각기 다른데 문제는 교회가 민주화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니라는 이해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영적인 실제에 가까워지도록 교회의 방향을 움직여가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이를 단순하게 해석해서 한 쪽은 다 틀렸으니까 그것을 부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방법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의 현실은 모두 부정하고 무조건 남녀평등으로 가야 된다는 주장은 굉장히 순진하면서도 육체를 입고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적인 토양이 성경에 충실하지 못할 때는 이런 문화 속에서 성경이 이야기하는 종국적인 목표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주목하는 것이 오히려 중요합니다. 작년과 올해가 다르고 5년 전과 지금이 다르다는 것을 보고, 그러면서 전진하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노예제도가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노예제도 타파를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물론 오네시모와 빌레몬 사이의 형제애를 강조했습니다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 신분을 부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그리스도 안에서의 관계는 종도 자유자도 없다는 영적 이상이었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그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발걸음이었습니다. 만일 그 상황에서 노예제도 타파를 이야기하면 혁명가가 되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혁명가로 부르시지는 않았단 말이죠.

마찬가지로 남녀문제도 그렇습니다. 현재 사회는 남녀간의 차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여기에 속해있지 않으면서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이상형을 향하여 나가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교회들마다 다르고 교회가 처해져 있는 문화적인 상황과 교회 전통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스텝’을 밟으라고 얘기할 수 없어요. 자기들이 있는 처지에서 주님의 이루신 일에 가장 가깝게 다가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을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이 고민한다면 점진적으로 더 온전한 모습으로 변화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져 봅니다. 감사합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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