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복 이야기

교회 갱신,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다리며...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5-01-28 09:31
조회
2886
<<뉴스엔 조이에 게재된 김형국 대표의 글을 옮깁니다.>>

뉴스엔조이 기사

 

그 '한 교회'를 통해서 얻는 교훈

한 교회가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대형화되어 갈 때에, 비록 대형 교회였지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제자 훈련을 하고, 비록 남녀의 구분은 있었지만, 작은 공동체로 교회 전체를 구성한 교회였습니다. 사실 그 교회를 설립하신, 지금은 소천하신 목사님은 '한 사람 철학'으로 성도 하나하나를 키워 냈습니다. 많은 교회가 세속화되어 가는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도, 한국의 뜻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교회를 통해서 위로를 받았었고 꿈도 꾸었습니다.

그랬던 그 교회가 오늘날은 세속의 가십거리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예배당, 건립 과정에 있었던 잡음들, 담임목사의 논문 표절과 상습적 설교 표절, 그리고 파행적인 당회 운영, 법원의 이런저런 판결을 기다리는 상태, 성도 간에 피할 수 없이 진행되고 있는 소송들…. 이제는 손가락질을 당할 수 있는 목록이 한두 가지가 아닌, 포괄적인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 교회로 전락했습니다. 담임 목회자가 바뀐 지 10년 정도 지나 이렇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참담하고 괴롭습니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건강한 교회, 타의 모범이 되는 교회라던 교회가 어떻게 이토록 곤혹스런 모습으로 전락할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이런 사례를 들어 교회의 대형화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맞습니다. 교인의 숫자와 자산 규모에 따른 사이즈는 결코 가치중립적일 수 없습니다. 교회가 일정량 이상의 규모가 되었을 때, 그에 걸맞은 내부 구조와 영성을 갖추지 않는다면, 사이즈가 커지는 것은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이즈만이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교회 세습, 재정의 불투명, 비정상적인 의사 결정 과정, 교회 지도자의 이성 문제 등등은 교회 사이즈와 관련 없이, 대형 교회에서뿐 아니라, 중소형 교회에서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급기야 성도들 중에 일부는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고 '가나안 성도'라는 말은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단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미국에서도 이런 경향이 10여 년 전부터 나타났지만, 이제 한국에서도 제도권 교회를 거부하는 일이 일어나고, 미국에서처럼 그것을 격려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히 한국교회는 이제 환골탈태의 갱신이 필요한 시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이미 심각한 문제들을 다 드러낸 교회는 물론이고,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교회들도 그 '한 교회' 사태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갱신이라고 하는 단어는 모든 교회가 마음속에 늘 품어야 할 화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지속적으로 변화되어 새로워질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답을 찾지 못하면, 한국교회는 한 세대가 지나지 않아 사멸하고 말 것입니다. 새로운 교회를 세워 건강한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갱신을 하여야 할 때를 맞게 된다면, 이 갱신이라는 주제는 정말 우리 한국교회의 살고 죽는 문제입니다.

교회 갱신의 핵심

교회 갱신을 위하여 다양한 시도들이 있는 것에는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교회 갱신의 강조점이 적지 않은 경우, 제도적 보완이나, 규모의 재설정, 다양한 교회 형태의 시도 등에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 필요한 일이지만, 저는 이 모든 문제가 예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나라 복음'을 선택적으로 또는 작위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가르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중심 사상을 놓쳐 버리고, 그것을 어떻게 담고,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끝없는 실패를 예견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시고, 선포하신, 그리고 사복음서가 증거하고 있고, 신약의 나머지 부분에서 살아 낸, 더 나아가 구약 전체가 기다리고 있었던 하나님나라 복음의 회복만이 교회 갱신의 핵심이고 본질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번 글과 강연으로 강조한 바가 있습니다). 이러한 신학적인 핵심을 바로잡는 것이 교회 갱신의 출발점이라면, 두 번째는 하나님나라 복음을 받아들여, 그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들이 진정한 의미의 예수의 제자인 셈입니다. 스승의 사상도 모르고, 알아도 살아 내지 않는 자를 우리는 제자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갱신의 두 번째 핵심은 사람에게, 더 정확히 예수를 따르겠다고 결단한 '예수 따르미', 예수의 제자들에게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람을 어떻게 키워 낼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청년이 되지도 장년이 되지도 않습니다. 영적 성숙도 마찬가지여서, 성장과 성숙에는 시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지혜롭고 균형 있는 양육이 필요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 갱신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분들에게 이러한 양육에 대한 그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을 키워 낼 것인가는 사실, 내 자신이 어떻게 예수의 제자로 성숙할 것인가에 대한 구도적 자세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제자 훈련 프로그램을 여기저기에서 가져다가 쓰지만, 실제로 제자를 키워 내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제자로서 예수를 따라가는 삶을 멈춰 섰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참된 제자만이, 예수의 제자를 키워 낼 수 있습니다(이런 이유로 몇 년 전부터 하나님나라복음DNA네트워크 사역을 시작해서, 관심이 있는 사역자들을 섬기고 있습니다.www.hanabokdna.org 참고).

그러므로 사역자가 되었건 성도가 되었건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 키워 내는 법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물론, 이는 하나님나라 복음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무엇보다 하나님나라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마치 무례하게 행하는 것과 동일하게 여겨지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여전히 인격적이고 적실하고 선명하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필요합니다(www.imseeker.org 참조,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참조).

이런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함을 알고, 그렇기에 그들 하나하나를 예수의 제자로 키워 낼 수 있습니다[www.hanabokdna.org 참조, <풍성한 삶의 첫걸음>(근간)과 <풍성한 삶의 기초> 참조]. 제자 훈련이란 이렇게 하나님나라 복음으로 한 사람을 키워 내고, 그가 또 다른 사람을 제자로 삼는 삶의 방식인데, 한국교회에서는 언젠가부터 교회 성장의 프로그램으로 전락했습니다[<제자훈련, 폐기될 수 없는 기독교의 생존 전략>(근간) 참고].

교회 갱신의 주체

예수의 참된 제자들이 일어날 때, 한국교회는 갱신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나라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여, 그 위에서 인생을 살겠다는 다짐을 한 예수의 제자들이라면, 그들은 반드시 하나님나라 복음이 창출해 내는 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거룩한 상상력을 상실해서,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교회에 대한 그림 대신, 자신들이 보고 경험한 교회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을 당시의 시각으로 읽어 내려가면, 이 소중한 책들이 쓰이고 읽힌 배경이 된 공동체, 교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예수의 참제자들이 추구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한, 서로 사랑하며 진실한 공동체를 이루고,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변혁적인 공동체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입니다. 현재 내가 속한 공동체나 교회를 적당히 유지하는 것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합당하지 못한 과제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신약의 교회들조차 추구하였던 더 온전하고, 더 낮아지며, 더 영향력 있는 참된 교회를 추구해야 합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이 공동체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현실의 모습에 절대 안주하지 않을 때, 교회 갱신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고, 이렇게 사랑하는 작은 단위의 공동체를 형성해야 합니다. 만약에 이렇게 서로 사랑하며 연대하며 함께 살아가는 작은 단위의 공동체가 살아 있다면,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형성할 때, 그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 공동체가 하나이든 여럿이든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여럿의 단위 공동체가 연대하여 교회의 교회 됨을 지킬 수 있다면, 사실 교회 사이즈는 본질적 논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작아도 사랑하지 않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나라 복음 위에 서 있지 않다면, 그 교회 역시 갱신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으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교회 갱신의 주체가 되는 예수의 제자가 꼭 목회자일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성도가 교회의 한 지체이며, 어디에서든지 하나님나라 복음으로 무장되어 성숙한다면, 작은 단위의 예수 따르미 공동체, 하나님나라 복음의 공동체를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 '우리 목사님' 탓을 하면서, 속칭 '평신도 배짱'으로 지금의 교회 문제에 자신들은 손을 씻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목회자들의 경우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우리 담임 목사님' 탓, '우리 장로님' 탓으로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하지 않고, 전수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주님 앞에서 용인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이런 하나님나라 복음의 비전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핍박이 따릅니다. 예수님이 당시의 로마 정권보다 바리새인과 종교 지도자들에게 핍박을 받으셨고, 바울이 이방인에게보다 유대인들에게 더 큰 고통을 당했던 것처럼, 오늘날도, 예수의 참된 제자들의 적은 세속 권력이나,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내에 있는 교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갱신에는 반드시 저항이 따르고, '자신의 배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습니다. 작은 공동체를 이끄는 성도로부터, 교회를 섬기는 부교역자들, 그리고 한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저항이 없이, 거룩한 갱신의 행보를 지속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다리며

2017년이면 마르틴 루터의 95개 조로 촉발되었던 종교개혁이 꼭 500년째가 됩니다. 한 밀레니엄의 반이 지나갔습니다. 로마 가톨릭이 가지고 있었던 많은 문제점들을 바로잡고, 원시 기독교, 예수께서 가르치시고 사도들이 이어 나갔던 믿음을 종교 개혁자들이 회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500년 동안 로마 가톨릭적인 교회 구조와 공동체에 대한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건물로서의 교회, 사제 중심의 신앙생활, 교회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늦어도 너무 늦었습니다. 그러나 이제야말로,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제사장'으로 서는 때입니다. 만인이 제사장인 신약의 가르침, 그동안 '설'(說)로 존재하던 진리를 온전히 드러낼 때가 이미 시작하였습니다.

학계와 교계에서는 아마도 앞으로 '만인제사장설'에 대한 논의가 꽃을 피울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도 그렇게 살아 보지 않고 실험해 보지 않은 이야기들을 논의하는 것이, 불필요하지는 않겠지만, 이제와 논의만 하고 있기에는 너무 늦습니다. 사실, 논의를 할 만큼 어렵고 복잡한 것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않고, 살게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시고, 모든 성도들이 매개자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 뿐 아니라, 제사장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치고,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바로 제사장입니다. 하나님나라 복음으로 온전히 성숙한 자들이 바로 이 제사장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의 신분을 가지는 것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제사장의 역할을 성도들이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 역할이라고 할 때, 성찬식, 설교, 축도 등을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상상력 부재의 문제입니다. 제발, 그런 분들은 성경을 다시 읽으시길 바랍니다. 신약성경 어디에 그런 규례가 있었습니까?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이 사람을 예수의 제자로 키워 내고, 성도들이 하나님나라 공동체를 세우고 재생산해 내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도를 키워 내는 비전과 역량을 갖춘 사역자들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렇게 성도들과 훈련된 사역자들이 함께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목회자에게 의존하는 교회가 아니라, 목회자는 성도를 의존하고, 성도는 목회자를 의존하는, 그리고 모두가 자기 역할을 가지고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그런 교회들이 한국교회의 대세를 이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교회들의 대열을 차지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아마도 'Again 1907' 때처럼, 다양한 행사를 3년 후에 기획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을 때 필요한 것은, 그런 세미나, 학회, 집회 이전에 하나님나라 복음으로 무장하고 성숙하여 교회 공동체를 세우고 갱신하는 성도들과 그들을 세우는 사역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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